T I M E F O R L A B

우리가 몰랐던 일본의 시간: 일본의 독립 시계제작자 5인을 만나다

December 31, 2025
By 쌍제이

바야흐로 독립 시계제작자의 전성시대다. SNS에서는 매일같이 새로운 시계가 등장하며, 이 때문인지 워치메이킹에 도전하는 이들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시계 문화가 몇 년 전보다 성숙해진 덕분인지 이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시계를 ‘소비’하는 것에서 벗어나 ‘창작’에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도 하나둘씩 보이고 있다. 단순한 한국산 시계가 아닌 자신만의 시계를 꿈꾸는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기점에서 일본의 생태계는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참고점이 된다. 비록 가장 가까운 국가이지만 그들이 쌓아온 시계 문화의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들은 스위스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도 세계 무대에서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왔다. 과연 그들은 스위스보다 척박한 인프라를 어떻게 극복하고 자신들만의 색을 찾았을까. 일본에서 활동하는 다섯 명의 인물을 직접 만나 그 답을 구했다.

HAJIME ASAOKA

하지메 아사오카

http://www.hajimeasaoka.com/

독립 시계제작자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이들 중 하지메 아사오카를 모르는 이는 단언컨대 없다. 일본인 최초의 손목시계용 인하우스 투르비용 제작자, AHCI에 입성한 두 번째 일본인, 그리고 쿠로노 도쿄로 독립 시계제작자의 서브 브랜드 붐을 이끈 것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

몽트르 아 탁

오늘 착용한 시계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

오늘 착용한 시계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시계 몽트르 아 탁(Montre à Tact)이다. 핸즈가 튀어나와 있어 만져보는 것으로 시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잘못 만져서 핸즈가 뒤틀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핸즈 안쪽에 서스펜션을 넣었다. 그래서 핸즈를 잘못 돌리더라도 손을 잠시 떼고 만지면 원래 시간을 알 수 있다.

산업 디자이너에서 독립 시계제작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는 광고업이 본업이었는데, 1996년에 잠시 시계 디자인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디자인한 시계의 반응이 좋아 이후로도 디자인 요청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시계 제작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조지 다니엘스의 워치메이킹을 읽으며 독학하던 중 2008년 리먼 사태로 인해 광고 일이 줄어들자 본격적으로 시계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 다음 해에 공개한 게 투르비용 #1이다.

독학으로 배웠다니 대단하다. 제품의 구상이나 제작에 있어 영감을 준 사람이 있는가.

보통 이런 질문을 하면 조지 다니엘스와 그의 책이라는 대답을 많이 들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시계 제작에 있어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은 맞지만 영감을 주었다기에는 디자인이 내가 추구하는 방향성과는 많이 달랐다. 오히려 올림푸스 카메라의 요시히사 마이타니라는 디자이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에세이를 읽으며 여러 기능을 한 디자인 안에 넣기 위해 어떤 고민이 필요하고 얼마나 노력을 해야하는지를 느꼈다. 정확히는 디자인 자체보다 그의 사상과 철학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요즘 유럽과 일본 양쪽에서 독립 시계제작자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독립 시계제작자로서 가지는 강점과 약점이 있나.

겸손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강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만들면 만들수록 스위스는 정말 모든 것이 월등하다고 느껴진다. 교육부터 공급업체까지 모든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애초에 수백 년에 걸쳐 완성된 환경이고 물량과 자본도 일본이랑은 다르지 않나. 특히 다이얼 도장 기술은 확연히 다른 걸 체감한다. 국가 차원의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다만 같은 재료여도 프랑스 사람이 요리하면 프랑스 요리같은 느낌이, 이탈리아 사람이 요리하면 이탈리아 요리같은 느낌이 나오듯 시계에 드러나는 일본의 색이 차별점인 것 같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인프라가 매우 잘 갖춰진 편이라고 느껴져서 답변을 듣고 많이 놀랐다. 어찌 보면 더 척박한 환경에 있는 한국의 워치메이커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나는 철도 모형을 좋아하는데 한국에는 철도 모형계에서 유명한 선진정밀이라는 회사가 있다. 일본의 매니아들은 물론 전 세계의 철도 모형 매니아들에게 인정을 받는 회사다. 이것처럼 한국 사람들도 정밀한 것을 만드는 것에 대해 타고난 재주가 있다. 관심만 가진다면 한국에서도 더 많은 워치메이커가 나올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서 재미있는 글을 하나 봤다. 2번 기어 내각의 CNC의 결과물과 핸드 피니싱의 결과물을 비교했던 글인데, 본인은 CNC로 만든 것을 사용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요즘 독립 시계제작자들은 모든 부분을 손으로 피니싱하는 것이 유행이지 않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CNC와 핸드 피니싱 모두 사용하지만, 해당 게시물은 강도를 희생하면서까지 억지로 내각을 만들며 핸드 피니싱을 하진 않을 것이란 뜻이었다. 기계공학적으로 내각이 둥근 기어가 각진 기어보다 내구성이 좋다. 요즘의 핸드 피니싱 유행도 크게 동감하진 않는다. 중요한건 설계의 안정성과 디자인이다.

쓰나미 밸런스 휠 스포크가 2개부터 4개까지 버전이 다양한 것도 설계를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인가?

당연히 밸런스 휠은 크고 가벼울 수록 좋다. 때문에 스포크가 2개인 것이 더 가볍고 공기 저항 면에서도 유리해 에너지 손실을 덜 받는다. 다만 쓰나미의 밸런스 휠 디자인에서 스포크를 4개로 늘리면 무게추를 더 설치할 수 있어 조정 난이도가 낮아진다. 아직까지도 스포크가 2개인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2개의 무게추로 오차를 조정하기엔 사실 굉장히 힘들다.

타카노 샤토 누벨 크로노미터

하지메 아사오카 브랜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이 궁금하다.

예전에는 시계 애호가들에게 고평가받는 시계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제는 오늘 착용한 시계처럼 독특한 시도를 하면서 다른 독립 시계제작자들에게 고평가받는 시계를 만들고 싶다. 쿠로노 도쿄는 ‘하지메 아사오카’ 디자인 DNA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는 지금의 방향성을 유지할 것이다.

한국에서도 쿠로노 도쿄의 인기가 매우 많다. 그런데 타카노의 인지도는 아직 높지 않다. 타카노를 소개해줄 수 있나.

타카노를 잠깐 소개하자면, 완판되면 단종되는 쿠로노 도쿄와 달리 지속적인 디자인을 목표로 한다. 또한 타카노는 브장송 천문대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들인다. 쿠로노 도쿄의 상위 브랜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JIRO KATAYAMA

지로 카타야마

https://otsuka-lotec.com/

시계를 만들기 전까지 시계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SNS에서 가장 인기 있는 워치메이커가 되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의 시계는 도쿄 ‘오츠카(大塚)’에 있는 ‘로 테크(Low-Tech)’라는 이름과 수수한 범용 무브먼트, 그리고 온 힘을 쏟아부은 디스플레이 모듈까지 근래 유행하는 독립 시계제작자들의 문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산업 디자이너에서 시작해 어쩌다 독립 시계제작자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독립 시계제작자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다. 다만 시계를 만들게 된 계기는 처음 선반을 샀을 때, 여기서 뭔가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거기서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이 시계였다.

공방과 도구에 대한 애정이 클 것 같다. 가장 아끼는 도구나 기계가 있는가.

중형 선반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핸들도 굉장히 독특하고 다른 여러 요소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구매했다. 나보다 약 열 살 정도 많은 기계인데 지금까지도 가장 아끼고 있다.

오츠카 로텍의 시계도 그런 기계들을 연상시키는 것 같다. 

그렇다. 특히 시계에 사용 중인 서체는 오래된 선반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계의 전체적인 디자인은 오래된 산업용 기기나, 일상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옛날 기계들에서 영감을 받았다.

본인의 시계 제작에 있어 영감을 준 인물이 있나.

독일의 요르그 샤우어다. 본인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시계들이 가진 인더스트리얼 디자인도 매력적이지만, 작업복을 입고 작업하는 것이 멋있었다. 보통의 워치메이커들은 하얀 가운을 입고 작업하지 않나. 그래서 나도 작업복을 입고 작업한다.

오츠카 로텍 No.9

가장 최근에 발표한 No.9은 독특한 디자인에 점핑 아워, 투르비용, 아워 스트라이크까지 오츠카 로텍에서는 최초로 여러 기능을 넣은 시계였다. 그중 가장 만들기 어려웠던 기능은 무엇인가.

몇 년 전부터 개발을 시작했지만, 그래도 실제 제품을 무브먼트부터 만드는 것은 처음이라 모든 부분이 힘들었다. 그중에서도 투르비용 설계가 가장 어려웠고 실제 제작도 힘들었다. 그래도 덕분에 독특한 무브먼트가 나와서 만족한다.

오츠카 로텍은 모든 모델에 독특한 초 디스플레이를 사용한다. 그런데 사실 이 방식이 초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방식은 아니지 않나. 의도가 궁금하다.

No.9을 제외하면 오츠카 로텍의 컴플리케이션이 매 초마다 움직이는 역동적인 컴플리케이션이 아니다. 그래서 시계가 항상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디스플레이를 추가했다. 개인적으로 투핸즈 시계들처럼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시계는 죽은 것 같아서 좋아하지 않는다.

오츠카 로텍 No.6

모듈의 완성도가 뛰어난 것도 공통된 특징인 것 같다. 특히 No.6의 레트로그레이드는 백래시가 전혀 없이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완성도 높은 모듈을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나는 시간을 표시하는 다양한 방식을 찾아보는 것에서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 내가 재미를 느끼는 디스플레이를 찾으면 그 모듈을 똑같이 만들어 보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개량하는 방식으로 제작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No.6는 레트로그레이드를 원하는 지점에 정확하게 멈추도록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때문에 정말 많은 고민 끝에 완성할 수 있었다.

요즘 인기 있는 워치메이커들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근래 유명해진 워치메이커들은 컴플리케이션보다는 심플 드레스 워치에 피니싱을 강조하는 편이지 않나.

이 부분은 추구하는 방향성의 차이가 아닐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시간을 표시하는 다양한 방법을 볼 때마다 놀랍고 이를 만드는 경험이 재밌다. 각자 제작자의 정체성을 쫓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오츠카 로텍 No.5 카이(改)

오츠카 로텍은 해외 팬들이 굉장히 많다. 지금은 온라인에서 일본 거주자에 한정해서 구매가 가능한데, 빠른 시일 내에 해외 팬들에게 문을 열 계획이 있나.

비슷한 문의를 해외 팬들로부터 많이 받는다. 하지만 지금은 오츠카 로텍 단독 매장을 오픈해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실물을 보여주고 싶다. 지금은 실물을 보고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나. 해외 진출은 그 다음 단계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해외 팬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NAOYA HIDA

나오야 히다

https://naoyahidawatch.com/

시계 업계에서 세일즈맨이자 마케터로 30년을 보낸 그는 2018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나오야 히다 앤 코를 설립했다. 디자인 하나로 전 세계 컬렉터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나오야 히다 앤 코의 시계에는 유명 워치메이커도, 백지에서 창조한 무브먼트도, 특별한 피니싱과 컴플리케이션도 없지만 ‘내 손목에 올리고 싶은 시계를 만든다’라는 단순하면서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철학이 숨어있다.

시계 업계에서 일한 경력이 굉장히 길다. 그런데도 커리어를 버리고 시계 브랜드를 직접 만든 계기가 궁금하다.

예전에 담당했던 브랜드의 일본 로컬 한정판을 담당해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내 의견이 전부 반영되지 못해 불만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선 나만의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한 인터뷰에서 프랑수아 폴 주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언급했다. 어떤 부분에서 영감을 받았나.

F.P. 주른에서 일할 때, 워치메이킹도 워치메이킹이지만 프랑수아 폴 주른이 제작과 운영, 경영을 모두 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내가 나오야 히다 앤 코에서 제작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기에 워치메이킹에 있어 영감을 받았다곤 말할 수 없지만 그 외 모든 부분을 많이 배웠다.

나오야 히다 앤 코 타입 1D

오랜 업계 경력만큼 유행의 흐름에 대해 굉장히 민감할 것 같다. 요즘은 나오야 히다 앤 코의 시계처럼 심플하고 작은 드레스 워치가 독립 시계제작자들 사이에서 유행하지 않나. 이게 대형 시계 그룹으로까지 이어질 것 같나.

메이저 브랜드들도 아마 이 흐름을 인지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도 요즘은 다운사이징이 트렌드이기도 하고. 다만 그들은 시계 하나를 생산하기 위해 많은 것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독립 시계제작자들보단 움직임이 느리게 보일 순 있을 것 같다. 드레스 워치라는 장르가 매니아층이 확실하기도 해서 섣불리 도전하기 어렵기도 하고. 장기적으로는 매스티지 브랜드들까지 다운사이징 트렌드가 이어질 것 같긴 하다.

독립 시계제작자들과 독립 브랜드의 다른 유행으로는 피니싱을 강조한 인하우스 무브먼트가 있다. 요즘은 핸드 피니싱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다. 나오야 히다 앤 코의 방향성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우리도 언젠가는 완벽한 피니싱을 곁들인 시계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만들고 싶고,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젊은 워치메이커들이 피니싱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시계는 일단 아름다워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전체적인 디자인이나 핸드 인그레이빙 다이얼 같은 요소에 집중한다. 하지만 우린 무브먼트 와인딩 느낌만큼은 신경을 많이 쓴다. 수동 시계는 ‘손맛’이 중요하지 않나.

나오야 히다 앤 코 타입 5A-1

나오야 히다 앤 코의 시계를 보면 인덱스와 핸즈, 케이스 모양이 각기 다 다른데도 같은 브랜드의 시계라는 느낌이 바로 든다. 요즘은 핸즈나 케이스로 패밀리 룩을 만드려는 시도를 많이 하지 않나.

가장 기분 좋은 말을 해줘서 고맙다. 신제품을 낼 때마다 각 시계의 개성을 살리면서 같은 브랜드라는 인상을 주려고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개성을 살린 예시로는 타입 5A와 타입 5A-1을 들 수 있다. 둘은 인덱스를 제외하면 비슷한 시계지만 타입 5A에는 사파이어 글라스, 타입 5A-1에는 항공기 캐노피용 아크릴 글라스를 사용했다. 브레게 뉴머럴 인덱스가 아크릴 글라스의 왜곡에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실물을 보면 둘의 인상이 사진보다 차이가 많이 난다.

타입 3 컬렉션의 문페이즈

나오야 히다 앤 코 타입 6A

나오야 히다 앤 코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컴플리케이션은 독특한 표정을 가진 문페이즈인데, 최근에는 퍼페추얼 캘린더로 본격적인 컴플리케이션에 도전장을 냈다. 퍼페추얼 캘린더로 시작한 이유가 있나.

이건 타입 3가 문페이즈인 것과 동일한 이유다. 내가 그 컴플리케이션을 좋아해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오야 히다 앤 코의 철학은 내가 착용하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문페이즈 얘기가 나온 김에 더 말하자면, 문페이즈의 표정은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태양의 탑에서 영감을 받았다.

NAYUTA SHINOHARA

나유타 시노하라

https://masaspastime.com/

‘마사의 취미(Masa’s Pastime)’라는 이름의 작은 공방은 본래 나카지마 마사가 앤틱 시계를 복원하는 공간이었다. 그런 공방에 젊은 청년 나유타 시노하라가 합류했다. 그의 합류로 완성된 나카지마 마사의 팀은 복원과 수리를 잠시 멈추고, 시계 취미의 종착지라 할 수 있는 제작에 도전한다.

한국에서는 사실 나유타 시노하라가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자기 소개를 부탁해도 될까.

소개를 하게 되어서 영광이다. 나는 히코미즈노 주얼리 대학에서 시계 제작을 배우고, 재학 중에 발터 랑에 워치메이킹 엑설런스 어워드 2020에서 일본인 최초로 금상을 수상했다. 이후 2021년 Masa’s Pastime에 합류했다.

공방의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앤틱 시계를 복원하고 수리하는 곳에서 어쩌다 시계 제작에 뛰어들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이건 순서가 반대다. 9명의 팀원 모두 시계를 만들고 싶어서 모였는데, 시계를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오니 복원과 수리 의뢰가 너무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은 시계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보통은 이렇게 팀이 많다고 해서 브랜드를 따로 가져가진 않는데 Masa’s Pastime은 MP 시리즈와 나유타 시노하라 컬렉션으로 구분되어 있다. 굉장히 독특하다.

두 컬렉션은 누가 디자인하고 감독하냐의 차이다. MP 시리즈는 Masa’s Pastime의 사장인 나카지마 마사 씨가, 나유타 시노하라 컬렉션은 이름처럼 내가 담당한다. 같은 곳에서 제작하지만 다른 브랜드인 만큼 두 컬렉션은 디자인 코드는 물론 부품까지 전혀 공유하지 않는다.

무브먼트를 새롭게 하나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브랜드까지 이원화하면서 전혀 다른 디자인, 부품, 무브먼트를 사용하다니 대단하다.

우리처럼 작은 공방에서는 안하는 방식이긴 하다. 원래 한 컬렉션을 먼저 제작 중이었는데 다른 디자인을 가진 라인업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와서 도전한 것이다. 디자인이 다르면 거기에 맞게 새로운 무브먼트도 필요하지 않겠나.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갈 생각이다.

나유타 시노하라 모델 A

나유타 시노하라 컬렉션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나.

시계를 복원하고 수리하는 곳이다보니 오래된 회중 시계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섹터 다이얼도 거기서 이어지는 포인트다. 브릿지 디자인은 대칭적인 요소에 집중했다. 발터 랑에 워치메이킹 어워드를 수상한 시계는 정면이 대칭인데, 이번엔 후면에서 구현해보았다. 이외에도 밸런스 휠 소재로 알루미늄 합금인 알보론을 사용했다. 기존 베릴륨 합금의 밸런스 휠보다 가벼워서 무게추를 8개까지 늘려도 무게 면에서 손해를 보지 않는다. 대신 강도가 높지 않고 잘 휘는 문제가 있는데,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인 밸런스 휠로 사용하면 장점만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MP시리즈 소코쿠

한 인터뷰에서 일본의 미를 부담되게 표현하면 ‘기념품 시계’로 전락할 것을 우려해 조심하고 있다는 내용을 봤는데, 어떤 요소로 일본의 미를 부담되지 않게 표현했는지가 궁금하다.

고객들이 그렇게 느끼게끔 의도하고 만들고 있다. 일본의 미를 예를 들면 모델 B의 경우 다이얼 표면에 와시(화지, 일본식 종이)의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소코쿠는 다이얼에 일본의 전통적인 문양에서 영감을 받은 패턴을 인그레이빙했다. 이런 요소들이 한눈에 ‘일본적이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보단, 시계를 천천히 봤을 때 알아챌 수준으로 과하지 않게 넣고 있다.

Masa’s Pastime에서 나오는 시계들은 쓰리 핸즈 드레스 워치만 생산하고 있다. 혹시 앞으로도 계속 심플한 시계들을 만들건지, 아니면 꼭 도전하고 싶은 컴플리케이션이 있나?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나카지마 마사와 내 대답이 정확히 같았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미닛 리피터에 꼭 도전해 보고 싶다. 이와는 별개로 지금 열심히 개발 중인 다른 것도 있다. 당장은 공개할 순 없지만 심플한 시계만 만들 생각은 없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만나본 모든 이들에게 물어보고 있는 질문이다. 일본의 독립 시계제작자들이 가지는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인프라가 역시 가장 큰 약점이다. 유럽, 특히 스위스는 정말 많은 서플라이어가 있고 그들끼리도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조가 너무 잘 되어있다. 반면 일본은 소수의 거대 기업을 중심으로 움직이다보니 독립 시계제작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서플라이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외부에 의존하지 않다보니 직접 많은 것을 만들어야만 한다. 대신 그런 과정에서 일본의 감성이 나오는 것이 강점인 것 같다.

FABIAN PELLET

파비앙 펠렛

https://www.fabianpellet.com/

워치메이킹의 성지인 스위스, 그중에서도 여러 워치메이커들을 배출한 발레 드 주를 떠나 가족을 위해 일본에 정착한 스위스인이 있다. 무엇보다 그는 브레게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부서 워치메이커, 발레 드 주 기술 학교(École Technique de la Vallée de Joux) 교사라는 탄탄한 커리어를 뒤로 하고 일본에 왔다.

일본으로 넘어와서 독립 시계제작자가 되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이유는 굉장히 간단하다. 아내가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발레 드 주에서 아내와 살다가, 아들이 태어나면서 아내의 가족 곁으로 가까이 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커리어 면으로 보면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으로 이주한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러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스위스와 비교했을 때 일본에서 워치메이킹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나.

공방을 세팅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처음에는 케이스나 다이얼은 물론 워치메이커 벤치를 만드는 곳까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일본의 전압은 100V다. 스위스는 230V라서 내가 가지고 있던 도구들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좋은 점은 앞서 말했듯 사람들이다.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다. 그리고 일본에 있다는 사실이 브랜드를 론칭할 때 이점으로 작용했다고도 생각한다. 도쿄에 있는 스위스 워치메이커라니, 독특하지 않나.

라운딩머신

일본에 넘어와서도 사용하는 도구들 중 가장 아끼는 도구가 있나.

워치메이커들은 어찌 보면 시계보다도 도구에 더 많은 애정을 준다. 가장 아끼는 것은 증조부가 사용하던 라운딩 머신이다. 이 머신은 르 에센셜 프로토타입과 초기 모델의 기어작업에 사용했었다. 그리고 샤블랭 70 선반도 애지중지하는 도구다. 샤블랭 70은 내 공방의 뼈대 같은 존재다.

파비앙 펠렛 르 에센셜

시계의 이름을 르 에센셜로 지은 이유가 궁금하다.

말 그대로 군더더기 없이 기본이 완벽한 시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과거 훌륭한 워치메이커들과 그들의 작품에 헌사를 바치며 그 예술을 이어가는 것이 목표다. 예를 들면 각지고 미러 폴리시드 가공한 유격 없는 나사, 프리스프렁 밸런스 휠과 브레게 오버코일 헤어스프링, 나무로 가공한 코트 드 제네브, 과거의 키 와인딩 무브먼트를 연상시키는 다이얼 쪽의 와인딩 메커니즘 등이 있다. 르 에센셜은 전통적인 워치메이킹의 기본기에 충실한 시계다.

르 에센셜의 무브먼트 브릿지 디자인이 알버트 H. 포터의 데탕트 크로노미터 포켓 워치와 닮은 것 같다. 

포터의 포켓 워치에서 일부 디자인적 영감을 받은 것은 맞다. 나는 곡선이 강조되면서 메인플레이트와 기어를 최대한 노출시키는 브릿지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자인 이외의 다른 부분은 내가 직접 계산하고 설계한 것이다. 예시로 르 에센셜에서는 무브먼트를 케이스에 고정하는 케이싱 스크류를 찾아볼 수 없다. 군더더기 없는 시계를 감상하는 데 있어 케이싱 스크류가 방해된다고 생각해 최대한 숨겼다. 그리고 이스케이프먼트 휠 브릿지는 1950년대 르로끌의 크로노미터 무브먼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당시 제니스 135나 푸조 260 같은 무브먼트를 보면 거대한 밸런스 휠 아래에 아주 작은 이스케이프먼트 휠과 그걸 고정하는 브릿지를 배치한다. 마지막으로 밸런스 휠은 마린 크로노미터의 바이메탈 밸런스 휠에서 영감을 받아 림 중간을 끊어놓았다. 원래는 평범한 모양이었지만, 내 멘토 프랑수아 에라르가 “대량 생산된 밸런스 휠과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인다”라고 언급해서 3개월의 노력 끝에 변경했다.

처음엔 피니싱이 눈에 먼저 들어왔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설계 면에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만든 것이 느껴진다. 그런데 요즘의 트렌드는 피니싱이지 않나. 이 유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워치메이킹은 여러 분야가 결합된 작업이다. 피니싱도 그중 하나다. 반대로 말하면 피니싱을 잘한다고 해서 완전한 워치메이커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피니싱은 무브먼트의 설계에서부터 쌓아 올린 정성의 마지막 표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립 시계제작자’란 타이틀은 설계, 제작, 조정, 피니싱까지 모든 역량을 갖춰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독립 제작자의 길을 걷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는 또 다른 도전 아닌가.

시계를 만들기 시작한 건 일종의 좌절감 때문이었다. 메이저 브랜드의 프로젝트에 참가할 때마다 설계와 구성 면에서 개선할 여지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메이저 브랜드에서는 개인이 중간에 개입해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보다 오래 살아남을 물건’을 직접 만든다는 아이디어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래서 브랜드의 이름을 내 이름으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시계는 내가 사라지고 나서도 우리 가족들과 고객들의 손목에서 가끔이라도 움직였으면 한다.